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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익산에서 만나는 백제의 자취>
  • 한국에너지정보센터
  • 승인 2018.09.1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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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는 익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백제의 중심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백제의 향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예부터 익산은 삶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교통이 편리하고 먹을거리, 볼거리, 배울거리가 풍성했다. 그래서 백제의 무왕은 바로 이 지역으로 서울을 옮겨서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 볼거리 배울거리 가득한 익산으로 떠나보자

 

영롱한 보석들의 향연

익산은 보석의 도시다.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보석박물관에 가면 보석의 왕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등 자연이 창조해 낸 최고의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수많은 보석류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보석판매센터(주얼팰리스)에는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앤 저렴한 보석들이 진열돼 있다. 결혼시즌을 맞아 예물을 맞추기 위해 찾아온 예비 신혼부부들의 설레는 눈길이 부러운 건 왜일까. 보석은 부가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산업이다. 익산은 보석 가공 기술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급 기술인력(금은세공, 보석가공, 다이아몬드 가공)의 대부분이 익산공단 출신이다. 보석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른바 ‘보석꽃’이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보석 세공가, ‘만프레트 빌트(Manfred Wild)’가 2년간에 걸쳐 깎고 다듬어 완성시킨 작품으로 백수정 화병 안에 금, 옥, 다이아몬드 등으로 제작한 2천641개의 보석꽃을 꽂아놓았다. 수많은 보석을 모자이크처럼 붙인 ‘오봉산 일월도’도 볼만한 전시물인데 이것은 17종 4만 8천여 점의 보석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밖에 순금으로 만든 미륵사지 석탑과 사리장엄도 눈길을 끈다. 관람시간은 10시-18시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박물관 한편에 마련된 화석전시관은 화석 및 공룡모형 등을 전시해 아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했다.

보석박물관에서 북서쪽으로 약 2km 정도 가면 넓은 논밭 한가운데, 20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돌장승이 마주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이 돌장승은 속칭 ‘인석’이라 불리는데 네모난 얼굴에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 등이 퍽이나 자애스럽다.

전설에 따르면 이 두 기의 석장승은 원래 하나는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라고 한다. 그런데 두 석상 사이로 냇물(옥룡천)이 흘러서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1년에 단 한 번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냇물이 꽁꽁 얼면 냇물을 건너가 만났다가 닭이 울면 헤어져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는 애달픈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들판에 쓸쓸히 서 있는 이 두 석상을 불상이라기보다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 한편 보석박물관 뒷산엔 왕궁저수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 정자, 함벽정이 있다. 정자에 올라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옛 영화가 그려지는 큰 절터

두 개의 석장승이 서 있는 곳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알려진 미륵사지와 쌍벽을 이루는 익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백제 양식의 5층 석탑이 있는 서 있는 곳은 옛날 궁궐터가 있던 자리로 이 석탑을 자세히 보면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백제탑의 전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탑의 구조는 큰 울림을 준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대형 건물지, 정원, 공방, 화장실, 짚신, 밤껍질, 참외씨, 회충알등은 이곳이 백제시대의 왕궁 내지 그에 버금가는 시설이었음을 알려준다.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발굴조사, 출토유물, 생활상 등 궁금한 사항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관람시간: 9-18시(월요일 휴관).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다. 백제 무왕이 부인 선화공주의 청을 듣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남아 있다. 무왕이 부인인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지금의 미륵산) 사자사로 가던 중 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이를 신통하게 여긴 선화공주가 무왕에게 부탁해 이곳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무왕 때(600~640년 추정) 세워진 높이 14m의 다층석탑은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이 짙게 배어 있고 그 옆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는 미륵사지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세월의 풍화에 마모된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은 20년간의 복원을 마치고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 미륵사지석탑은 일제시대인 1910년경에 반파되어 9층 중 6층만 남고 그나마 반은 시멘트로 흉하게 때워져 있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 금동향로 등등 각종 유물을 전시해 놓은 미륵사지전시관에도 들러보자. 19,000여 점에이르는 소장 유물은 그 옛날 미륵사의 영화를 짐작케 해준다. 미륵사가 창건된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미륵사가 폐사된 조선시대까지 유물을 시대 순으로 살펴볼 수 있다. 관람은 무료이며,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월요일은 휴관)다.

팔영산 인근의 용암마을에서는 아름다운 일출도 볼 수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암마을(영남면 우천리) 우측 해안가에는 검은 빛이 나는 용바위가 서 있다. 저 고성의 상족암을 연상케 하는 바위는 군데군데 패여 있다.

용바위 우측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굴이 있다. 용바위에서 양사리 방면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남열해변이 펼쳐진다. 때를 만난 바다는 시원하고 청량하다.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은 울창한 송림과 기암괴석을 두르고 있어 풍광이 멋스럽다. 파도가 다소 거친 것이 흠이지만 훤히 열린 다도해로 떠오르는 해돋이는 가히 환상적이다.

 

금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금강을 끼고 있는 웅포는 익산중에서도 풍치가 가장 아름답다. 금강으로 지는 웅포 낙조는 일찍이 서해 5대 낙조로 꼽혀왔고 곰이 금강 물을 마시는 모습과 닮았다는 ‘곰개나루’는 지난 20여 년 전만해도 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지금은 철새나 낙조를 보러온 사람들과 레저스포츠(자전거, 캠핑)를 즐기는 관광지로 변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웅포면과 함라면에 나지막이 솟은 함라산은 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익산의 진산이다. 함라산 일원에는 총 길이 13.8km의 둘레길도 만들어졌다. 양반길, 명상길, 병풍길, 역사길, 건강길 등 5가지 주제로 조성된 이 둘레길의 기점은 함라한옥마을. 토석담, 토담, 돌담, 화초담 등 다양한 담과 3부잣집(조해영 가옥, 김안균 가옥, 이 배원 가옥)이 있는 한옥마을은 하나같이 고풍스럽다. 함라산을 주산으로 삼은 마을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우산이 품고 있다. 특히 마을 담장길은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돼 있다.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으며 인근에 천년고찰 숭림사가 있다.

함라마을에서 충남 강경 방면인 망성면 화산리에는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어린 나바위성당(화산천주교회)이 있다. ‘나바위’라는 이름은 이곳에 왔던 우암 송시열이 마당처럼 너른 바위를 보고 첫눈에 반해 붙였다고 한다. 한국 전통양식과 서양 건축 양식이 합쳐진 건물은 당시의 풍속에 따라 남녀 좌석을 칸막이로 막고 출입구를 따로 낸 구조가 특이하다. 나바위성당 뒷산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비와 망금정(望錦亭)이 있다.

망금정은 1915년 베르모렐 신부가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의 피정(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봄)을 위해 지은 정자다. 시간이 있다면 ㄱ자형 예배실로 유명한 두동마을의 두동교회와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교도소 세트장(성당면 성당리)도 들러볼 만하다. 두동교회는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 휘장을 쳐 남녀가 서로 볼 수 없도록 했는데 유교적 관습이 낳은 건축물이다.

익산은 국경(백제와 신라)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 즉 ‘서동설화’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사모한 나머지 신라 서울에 와서 노래를 지어 성안의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고대 설화다. 비록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려던 백제 30대 임금 무왕의 꿈은 사라졌지만 사랑 이야기는 1천400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익산 외곽인 석왕동 산자락에는 동서로 약 200미터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커다란 능이 있는데, 왕(무왕)과 왕비(선화공주)
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릉으로 불리는 이 두 능은 부여 능산리 고분과 같은 형식으로 가운데 것(대왕릉)이 약간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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