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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이 간직한 자연과 역사
  • 한국에너지정보센터
  • 승인 2018.05.0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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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을 지키는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

달성은 대구광역시에 속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대구 땅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여행자들에겐 좀 낯선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끼고 있다는 점은 달성의 가장 큰 매력이다.

봄기운 자욱한 낙동강을 끼고 하빈면 묘리에 이르면 순천 박씨 집성촌이 나온다. 사육신(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을 모신 육신사가 있는 곳이다. 육신사는 세조의 왕권 다툼에 맞서다가 죽임을 당한 여섯 신하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박팽년 (1417∼1456)만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직계 후손이 선생의 기일날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사우 건물인 숭정사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돼 있다. 한눈에 봐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인 숭절당도 볼만하고 태고정은 보물 제554호로 지정돼 있다. 사당 앞에는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1979년 건립)가 세워져 있고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 삼층각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육신사가 있는 마을은 전체가 한옥 기와집으로 꾸며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육신사에서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으면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지은 삼가헌이란 집이 나온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다. 이 누각은 원래 서당으로 썼는데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단아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집을 지으면서 안채와 사랑채 옆에 원형 섬과 외나무다리를 둔 연못을 꾸미고 연을 심으니 하엽정이란 당호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육신사에서 강정고령보를 잇는 강변길은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 넘친다. 주말이면 어디서 왔는지 자전거족들과 트래킹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걷노라면 몸에 달라붙은 강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청량하다. 보와 습지 주변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달성습지는 사진 포인트로 제격이다. 습지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과 강변 제방의 다양한 꽃들, 그리고 푸른 강의 조화가 참으로 멋스럽다. 강정보 근방의 마을에 매운탕과 장어를 파는 맛집들이 많아 허기를 달랠 수 있고 낙동강과 주변 들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더구나 해질 무렵이면 낙동강과 어우러진 일몰이 탄성을 자아낸다. 낙동강과 대구를 잇는 사문진 나루터도 지척이다. 이곳은 영남 일대 보부상이 들어오던 옛 영남 물류의 중심지로 최근 들어 유람선이 뜨고 주막촌도 복원했다.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맨 처음 들어온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를 기려 매년 10월에는 피아노 축제도 연다.

 

☞해학과 미학이 있는 서원 답사

달성의 멋은 다람재 너머에 있는 도동서원에서 제 빛을 발한다. 낙동강을 따라가는 다람재는 풍광이 지극하다. 봄이 찾아온, 가물가물 아지랑이 이는 들판과 낙동강의 수려한 풍경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산길을 넘어 도동서원에 다다르니 문득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반갑게 길손을 맞아주는 누군가가 달려올 것만 같다.

먼저 우람한 크기의 은행나무에 눈길이 멎는다. 하늘을 향해 키를 돋운 이 은행나무는 어른 서너 명이 두 팔을 뻗어야 겨우 닿을 만큼 둥치가 크다. 수령이 약 400년에 이른다고 한다.

도동서원은 조선전기의 학자이자 도학의 창시자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김굉필(1454-1504)은 한성에서 태어난 성리학자로 27살에 생원시(벼슬 이름)에 합격하고 마흔에 관직에 올라 형조좌랑(정6품 벼슬)을 지냈다.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도학의 정통성을 계승한 인물이다. 도동서원은 우리나라 5대 서원으로 꼽힐 만큼 규모가 크다. 원래는 비슬산 동쪽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5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었다. 서원은 은행나무를 앞에 두고 낙동강이 굽어보이는 수월루와 환주문, 중정당, 그리고 사당이 조화롭게 들어섰다. 각각의 건물은 좌우대칭을 이루고 모든 공간은 질서와 절개를 삶의 철학으로 삼았던 중용의 정신이 배어 있다.

북향으로 지은 중정당(中正堂)은 웅장한 목조 건축물로 기품이 느껴진다. 강당 안에 걸려 있는 다양한 현판도 흥미롭다. 또한 서원 곳곳에는 동물상과 서화가 보이는데 이는 서원이 지켜야 할 질서와 원칙을 상징한다. 이를테면 강당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 옆에 조각돼 있는 다람쥐 모양의 동물상은 서원 출입(동입서출)의 기본 질서를 지키라는 의미다. 도동서원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서원 전체를 두르고 있는 토담이다. 자연석 사이사이에 흙을 쌓아 올리고 1m 간격으로 수막새(기와)를 엇갈리게 끼워 넣었는데 둥근 기와는 하늘을 의미하고, 긴 기왓장은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담장은 우리나라 담장 중 최초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스타마을’로

지금은 다 옛말이 됐지만 대구에서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던 마을이 있었다. 비슬산 자락(달성군 화원읍 본리2리)에 있는 마비정마을이다. 2012년부터 마을 담장에 벽화를 그리면서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대구에서 가장 ‘핫’한 동네로 떠올랐다. 마을로 들어서면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갖가지 벽화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연 날리고 얼음 지치는 겨울 풍경, 쟁기질 하는 황소,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아이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은 교실 풍경 등등 소재도 가지가지다. 흙담에 그린 벽화를 가까이서 보면 매우 사실적이고 입체적인데 감정이 풍부한 이라면 문득 웃음보가 터지고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벽화는 마을 출신 이재도 화백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놀라운 집념이다.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노라면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간 듯 마음이 안온해진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며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물레방아와 옛날 농기구들도 볼 수 있다. 돌배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한 나무로 자란 연리목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나무라고 한다. 100년 수령의 살구나무와 둘레 1m, 높이 15m에 달하는 옻나무도 볼거리 중 하나다. 국수와, 두부 등을 파는 간이식당도 갖춰 놓았다. 사월에 가면 온 동네를 연분홍으로 물들인 살구꽃을 만날 수 있다.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삼필봉을 잇는 1.5㎞ 거리의 마비정 누리길도 생겼다. 험한 길이 아니어서 등산을 겸해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볼 일이다.

마비정마을에서 2km 거리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에도 들러보자. 한옥과 돌담길과 고목이 정겨운 전통 깊은 마을이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처음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일군 마을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흥사 절터가 현재의 마을이다. 기와집이 대부분인 마을은 격조와 품격이 있다. 종가인 죽헌종택과 수백당(수봉정사)은 1986년 강수연 주연의 ‘씨받이’를 촬영한 장소고 마을 가장 안쪽에 있는 광거당(廣居堂)은 같은 해 장미희 주연의 영화 ‘황진이’를 촬영했다.

 

☞천연냉장고와 인심이 넘치는 현풍장터

현풍읍 상리 현풍면사무소 인근에는 1730년에 만들어진 현풍석빙고(일명 상리석빙고, 보물 제673호)가 있다. 뒤로는 산이고 앞으론 시내가 흐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이 석빙고는 그 옛날, 계곡의 물이 얼면 얼음을 떠다가 보관했다고 한다. 남북으로 길게 쌓아올려 마치 큰 고분처럼 보이는데 내부 천정과 벽은 모두 화강암으로 돼 있다. 청도·창녕·경주·안동에 있는 석빙고와 구조와 형식이 비슷하다.

역사가 무려 100년 가까이 된 현풍장터도 볼만하다. 끝자리 5 · 10일에 서는 현풍장은 현풍백년도깨비시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현풍천까지 좌판이 벌어질 정도로 규모가 크다. 뻥튀기 장수가 있고, 생선 좌판, 옷전, 나물전, 과일전이 그들먹하게 펼쳐져 흥을 돋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집은 끼니를 때우려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대구엔 커다란 산 두 개가 있다. 도심에서 가까운 팔공산과 달성의 비슬산이 그것이다. 비슬산의 매력은 장중함과 함께 낙동강을 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삼국유사를 쓴 일연의 자취가 서려 있다면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뭔가 깊은 사연이 있는 산은 생각만으로도 감흥이 밀려온다. 일연과 비슬산과의 인연은 옛 절터인 대견사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데 일연은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대견사에 들어와 이십여 년을 머물렀다. 짐작하건대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초안을 짜지 않았을까. 등산로는 여러 군데지만 비슬산자연휴양림을 거쳐 대견사지로 오르거나 천년고찰 용연사를 기점으로 삼아도 좋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현풍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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